
일제 강점기 치열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의 지평을 연 위대한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의 순국 90주기를 기리는 추모식이 2026년 2월 20일 오전11시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엄숙히 거행되었다.

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청주시와 충북남부보훈지청이 후원한 이번 추모식은 “조선에 자유 있거라, 조선에 평화 있거라.”라는 슬로건 아래, 선생의 강직한 독립 정신과 민중 중심의 사상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다.

정·관계 및 후손 참여… 다채로운 추모의 장
이날 행사는 충청북도의회의 이상식의원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기념사업회 박종관 공동대표의 약력 보고로 시작되었다. 현장에는 우원식 국회의장,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이강일 국회의원, 광복회 류윤걸 충북지부장 등 주요 인사들과 선생의 증손자인 신정윤 씨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특히 온몸주식회사가 선보인 추모 헌정 공연은 원작 연극 <자혜, 그 누구도 아닌>을 재창작한 것으로, 신채호 선생과 그의 신념을 함께했던 아내 박자혜 선생의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황운하 상임대표, “민중이 역사의 주체... 선생의 뜻 이어갈 것”
기념사업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황운하 대표는 ‘그 강직한 이름 앞에 서서’라는 제목의 헌사를 통해 선생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황 대표는 “선생님은 왕정복고 운동과 단절하고 공화주의를 정초 하셨으며,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한 민족사학의 주창자였다” 평가했다.

또한 현재의 국제 질서를 언급하며 “선생님과 순국선열들이 세운 이 나라를 국가의 대본영이 된 민중이 지킬 것이며, 대한민국은 평화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선생이 쓴 항일선언문의 최고봉인 ‘조선혁명선언’의 문구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를 인용하며, 선생의 뜻을 기리는 사업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민족의 큰 스승,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1880년 대전에서 출생한 단재 신채호 선생은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주필로 활동하며 언론을 통한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단,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등에 참여했으며, 《독사신론》, 《조선상고사》 등을 집필해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정립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선생은 1928년 무정부주의자 동방연맹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여순감옥으로 이송되었으며, 1936년 2월 21일 이국땅 차디찬 감옥에서 끝내 순국했다.

이번 90주기 추모식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이자 진정한 민주주의의 선구자였던 신채호 선생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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