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제110회 총회를 평가한다.
총회가 마무리되었다. 기자는 계속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기사나 영상 하나에도 편파적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양측에 도움이 되는 조언이나 기사도 작성했다. 승자와도 패자와도 원만한 관계다.
상황이 종료된 지금, 이 글은 누군가의 오해를 일으키고 기자에 대한 불신을 만들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왜 나서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기자의 결론이다.
심판자도 아니고 의인도 아니다. (그동안 관계를 생각해 직언을 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과정에 함께 했던 기억을 더듬어 이 글을 쓴다. 오해를 감수하더라도 당사자를 비롯한 모두에게 유익하다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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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허비했다. 소모적인 정쟁이었다. 이미 예상된 일이다. 하루는 24시간, 그러니 1600여명의 시간을 합하면 38,400시간이다. 이 많은 시간을 흘려보낸 것이다.
후유증은 크다. 4~5일 중 하루는 20~25%다. 시간은 금이라는 옛 말도 있다. 모든 시간을 생산적인 일에만 쓸 수 없을지라도.. 결국 전국교회가 헌의한 안건을 졸속 처리했다.
그 뿐인가? 서로 비난하고 공격하고 물리력까지 행사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갈등하며 상처를 주고받았다. 성(聖)총회를 입에 달고 말하고 기도하지만 공허한 소리다.
그래도 승자는 있다. 승자에는 축하를, 패자에는 위로가 필요하다. 그런들 승자가 기뻐할 수 있을까? 패자의 상한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어 받아들이고 침묵할 것이다.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가 아니라)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선거관리위원장 오정호목사, 총회장 김종혁목사. 그리고...
마주 달리는 기관차였다. 총회가 목전에 임박했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해결하려는 듯 제스처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쇼에 불과했다. 양측은 자기 입장. 자기 고집만 피우고 지도자들은 무책임했다.
지도자들은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 아니 ‘할’ 의지가 없었다. 떠도는 말에 의하면 ‘83회 커넥션’이 언급된다. 상대방을 고소하는 과정이나 해결방안을 찾아가던 모든 과정에서... 그래서 안 됐을까?
이미 선거관리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들에 대한 불신도 컸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A후보는 탈락시키고 B후보를 당선되게 하겠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예상대로였을까? 고광석후보의 후보자격은 유보하고 정영교목사의 후보자격은 문제없이 확정되었다. 3년 전의 데자뷰였다. 후보였던 오정호목사의 후보자격은 유보되고 고인이 된 한기승목사의 후보자격은 확정되었다.
당시 오정호목사는 상대방의 고소로 후보 탈락의 위기에 놓였다. 선거운동이 금지된 활동 때문이었다. 인륜의 문제기에 선거법을 들이대면 안 된다 했지만 법은 법이다. (이번에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오정호목사가 그렇게 강조했듯이)
본 기자는 당시에도 중립에 서 있었다. 중립적이고 균형 있는 보도를 했다 자부한다. 선거법 위반이 맞지만 경중을 따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후보자격 박탈 아닌 주의나 경고가 ‘맞다.’는 것이다.
당시 선관위원장이었던 새에덴교회 소강석목사는 고민했을 것이다. 크든 적든 선거법 위반이라는 자를 들이대 후보자격 박탈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소목사는 그런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오목사의 후보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주장하는 언론과 사람들이 많았다. 상대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면 동향에다 절친 인 한기승목사가 부총회장이 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위기에 처했던 과거가 있음에도) 오정호목사는 선거관리위원(장)으로써 고광석목사의 후보자격을 박탈했다. 단독 후보가 된 정영교목사는 쉽게 기립 박수 속에 당선되었다.
오정호선관위원장이 고광석목사의 후보자격을 박탈한 것은 그 유명한 ‘7천 만 원’ 사건이다. 총회의 파송을 받은 고목사가 자신의 교회 계좌로 천안 모교회에서 7천 만 원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고목사는 부정한 금전이 아니라며 논란을 일으킨 책임으로 선관위 서기 직을 내려놓았다. ‘7천 만 원’도 ‘선교비’라며 원래의 교회로 반환했다. 도덕적 흠결이 생긴 것이다.
‘7천 만 원’에 대한 고소고발(?)도 있었다. 고목사가 경찰 조사과정에서 해명하고 증거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안다. 경찰은 ‘7천 만 원’이 종교단체인 교회에서 타교회 계좌로 이체되었고 선교비 명목이기에 혐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7천 만 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부정한 돈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고목사가 선교비라 하고 고소 사건에서도 문제되지 않고 ‘무혐의’ 받은 사실도 팩트다.
선관위의 판단은 어땠어야 할까? 총회 선관위가 제시한대로 후보자가 적절한 자료를 제출했고 그 자료에 문제가 없다면 후보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소문’이나 ‘심증’은 ‘후보의 자격’과 관련한 심사에 아무 문제를 끼칠 수 없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고목사의 후보자격을 유보하고 다시 모인 회의에서 선관위원들의 투표로 후보자격을 박탈했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투표로 부총회장 후보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가?
후보직을 박탈당한 고광석목사와 서만종목사는 반발했다.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재심을 청구했지만 역시 기각이었다. 선관위가 꿈적도 안하는 상황이기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임원 후보자 정견발표회가 열렸다. 후보직 박탈의 문제점을 따지고 항의하기 위해 발언기회를 요구했다. 후보직 박탈로 정견 발표할 기회를 빼앗겼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당한 요구지만 거부당했다.
반대로 남경기노회는 위원회로부터 천서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총대 확정이 안 되면 정영교목사가 후보자가 될 수 없는데 정견 발표하려 한다는 것이다. 정견발표회는 파행으로 끝났다.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총대들의 서명을 받아 총회장에게 실행위원회를 열어 달라 요구했다. (고목사측으로서는) 총대들의 힘으로 부당하고 편협적인 선관위를 압박하거나 해체하고 싶었을 것이다.
임원회는 실행위원회 소집을 거부했다. 대신 5자 또는 4자 협의를 하자고 했다. 총회 임원회와 선관위 임원회, 그리고 고광석목사측 5인과 정영교목사측 5인이 협의하자는 것이었다.
정영교목사측 남경기노회에 대한 내부 폭로와 고발로 감사부도 함께 할 거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4자로 제한했다. 선관위가 임원회의 월권이라며 참석거부도 거론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2명이 참석했다.
결과는 빈 깡통이었다. 자기주장만 하며 평행선을 달린 것이다. 총회가 파행의 위기에 놓였는데도 김종혁총회장의 임원회는 수수방관하고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취했다. 긴장감만 고조되었다.
‘총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가 ‘총회를 위한 긴급 기도회’도 열었다. 음성녹음과 자료들을 제시하는 이의성선교사의 폭로도 있었다. 답답함을 토로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선관위원장 오정호목사는 확신의 사람으로 보인다. 평소 큰 목소리로 강하게 발언하는 것이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그런 오목사에게 고목사의 행적과 해명은 부정하고 거짓말이라 보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fact’냐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확신이나 믿음이 무엇일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이다. 우리도 무언가를 알거나 ‘100% fact'라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왜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소수라 할지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들어보고 자기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만과 독선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사이비나 이단들의 행태가 그렇다. 그릇되고 왜곡된 해석이나 주장을 진리라 믿는다. 어떻게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이 언제나 옳을 수 있는가? 어떻게 자기 확신으로 다른 사람을 재단할 수 있는가?
고광석목사에 대한 선관위원장 오정호목사의 판단이 옳을 수 있다. 그것은 고광석목사가 거짓말한다는 전제다. 우리는 궁지에 몰려 (속으로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고) 거짓말 할 때가 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그럴지라도 누군가가 자기를 변호하거나 오해를 풀기 위해 하는 말을 거짓이라며 매도해서는 안 된다. 거짓이라는 심증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나의 선입관이나 오해, 그리고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증명할 자료가 없기 때문일 수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선관위원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 역할에 대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선관위원장으로써의 역할만 잘 감당하면 된다는 것이다. 진위를 알 수 없음에도 자기 확신으로 단죄하려는 것은 위험하다.
증경총회장이 된 김종혁목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김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를 대표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고광석목사와 서만종목사의 후보자격을 박탈한 선관위, 정영교목사의 남경기노회 천서를 유보한 천서위원회.
선관위와 천서위원회는 모두 총회 산하의 기관이다. 산하 기관에서 총회 개회를 위태롭게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총회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총회장의 중재나 지시를 따르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다는 방관적 자세를 취한다면 스스로가 총회장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산하 기관의 잘못으로 총회에 문제가 발생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밖에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한 권면이나 지시를 거부할 경우 총회장은 산하 기관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리더십이란 문제 해결 능력이다. 산하 기관을 잘 조정하여 총회를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총회장의 역할이다.
어떻든 총회를 잘 마치지 않았느냐 할지 모른다. 이번 총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총회인가? 그렇게 입으로 되 내이는 성(聖)총회였나? 위기에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김종혁목사는 총회장의 역할을 잘 감당했나?
아니었다. 4자 5자 회담을 추진할 때만 해도 기대가 되었다. 총회장으로써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선다 생각했다. 당사자들 이야기만 듣고 말려면 뭐 하러 그런 모임을 가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분명한, 두 기관차가 서로를 향해 달려오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김종혁목사는 방관했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총신 83회의 결탁에 김종혁목사도 부하뇌동한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야 총회장의 역할을 방기할 수 있는가?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루 24시간, 전체 총대 1,600여명의 38,400시간을 낭비했다. 성(聖)총회가 아닌 고성이 오가는 성(聲)총회가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다. 피할 수 있음에도...
김종혁목사의 회의 진행과정도 문제였다. 회의를 주재해야 하는 총회장이 총대들의 허락도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총대들의 권리인 발언의 기회를 제한해 결과적으로 불합리하고 잘못이라 여기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을 지적하지 못하게 했다.
문제가 된 남경기노회 천서 과정에 대해 본회의장에서 논의하기로 결정된 후 김목사는 이상한 결정을 했다. 총대 천서 받지 못한 노회와 개인이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천서위원들이 합의해 올린 노회나 개인의 천서를 다시 재론하며 시간을 끌었다.
김목사가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게 함으로 남경기노회의 천서문제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천서 과정에서의 문제는 남경기노회였다. 문제가 된 사안에 대해 집중해 충분한 토론과 확인을 했어야 한다.
김목사의 의도(?)대로 남경기노회 천서문제를 충분히 토론 할 수 없었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거나 사실관계를 규명해야 하지만 시간을 제한하고 횟수를 제한해 진실 규명을 막은 것이다.
18개 당회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근거와 주장을 들어야 한다. 22당회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자기 입장을 설명하고 상대방이 다른 주장을 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
장로회는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는 정치 제도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토론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손들라면 들고 내리라면 내리는 거수기가 아니다. 설명하고 묻고 토론하는 더딘 과정을 통해 민주적인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발언 횟수와 시간을 제한한 이유가 무엇일까? 김목사는 총회 회무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서라 했다. 그것이 빠른 회무인가? 하루를 다 허비한 이유가 무엇일까? 빨리 진행한다며 자유로운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니 총대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회무를 진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총대들의 항의로 회무가 중단되었다 총대들의 원성으로 다시 발언기회를 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박병호목사는 총대들이 고광석목사의 후보 자격문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공문을 화면에 띄어줄 것을 요구했다. 고광석목사의 자격을 박탈한 선거관리위원회의 공문이 합당한 이유를 적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김종혁총회장은 너무나 간단하고 효율적인(증거가 될 만한 자료를 보면서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수 있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다. 임원선거도 노회원들의 반대나 발언 요구를 무시한 채 국회의 날치기 같이 처리했다.
총회 선거에서 (누구는 배제하고 누군가를 당선시키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일까? 그것은 엘리트의식이 아닐까 싶다. 자신들만이 총회를 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생각으로 상대방을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성골이란 말이 있다. 우리 총회의 성골은 무엇일까? 실제로 양립해 비교하는 단어들이 있다. 합동과 구)개혁, 총총과 비총총, 그리고 교갱과 기타. 양립하는 개념을 설명하는데 필요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이미지와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교단 통합이 이루어진 기간이 10년이 되었음에도 구)개혁을 운운하는 것은 참된 기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이방인도 하나인데 같은 뿌리와 신앙을 갖았기에 통합해 놓고 여전히 구)개혁은 안 된다며 악마화하는 것은 큰 문제다.
총회는 모두 마쳤다. 무책임과 독선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김종혁총회장과 오정호선관위원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 시간을 허비하고 비난과 갈등의 현장을 만든 당사자들이다. 우리 편만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지도자라면 결탁하여 강자 편에 서거나 강자의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교훈과 정신을 이어받아 가난하고 약한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약한 사람에게 잘못이 있을지라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고 보호해주어야 한다.
잘못이나 불법을 용납하라는 것이 아니다. 약자기에 피해를 당할 수 있고 약자기에 어려움을 당하거나 죄에 빠질 수도 있다. 다만, 정죄하는 것보다 사랑으로 다가가 용납하고 품어주고 잘못을 깨닫게 해야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10회 총회를 통해 승리한 분들은 더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긍휼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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