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성경은 여성목사 안수를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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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여성목사 안수를 반대하는가?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기사입력 2019.12.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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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11~15<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서론>

할렐루야! 오늘은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강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며 기다리신 절기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오시는 성탄을 기다립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성도라면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번 성탄절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기다리고 성탄절을 기다려야 할까요? 단순히 예수님이 오시기만 바라보며 오시는 때만 기다리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살기를 바라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와 같이 준비 없이 졸며 자고 있다가는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오셨다는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오시면,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 받을 죄인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본질적인 구원을 설명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고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구원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구원 받은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현실에서의 구원도 맛보고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세의 구원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습니다. 내세의 구원,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구원을 바라봐야 하지만 현재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은혜가 세상에 임하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15에서 예수님은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사도도 현실에서 누리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은혜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9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대속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가난한 자들이 부요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이사야 535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메시아의 사역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았다는 것입니다.



 

<본론>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구원의 은혜만이 아니라 우리의 고난과 어려움에서도 구원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하신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습니까?

 

1.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11~12)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서신을 통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디모데에게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교훈한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전하기가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의 내용이 남성중심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지게 여성을 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문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먼저 본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읽어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211 말씀입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사도 바울은 본문을 시작하면서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대상에 대해 특별히 언급합니다.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대상을 여성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여성이 들어야 할 말씀도 있고 남성이 들어야 할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성이나 남성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들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은 말씀을 들어야 하는 대상을 한정하여 여자라고 언급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은 우선적으로 여성이 들어야 할 말씀처럼 보입니다. 바울사도가 여성들에게 전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체란 말이 무엇입니까? 일체란 말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은 모든 일에 있어서 여자는 순종해야 하고 조용히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말씀에 대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말씀은 여자에 대하여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 말 하지 말고 조용히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누구에게 배워야 합니까? 사도나 선지자나 교사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나 전도사나 교사에게 배우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가르치는 사람에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배울 대상이 단지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여자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여자가 누구에게 일체 순종해야 하고 조용하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일반적으로 여자가 배워야 할 대상은 여성과 대비되는 남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여자는 남성에게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하고 조용히 배워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여겨집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어떻게 이해됩니까? 남성 중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성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남녀는 평등한 존재로 여기는 민주화된 세상에 사는 사람이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전한 본문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주저하면서도 곧이곧대로 따라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 아무 이의 없이 받아들일 때도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사회가 그러한 구조와 가치관으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여자가 따라야 하는 세 가지 예절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그리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는다는 말입니다.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윤리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말씀도 이러한 말들과 비슷해 보입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일체 순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조용하게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일체 순종하거나 조용하게 배운다고 할 때는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단지 여자이고 남자라는 사실만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일체 순종해야 한다는 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용히 배우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사도의 가르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전서 212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바울사도는 본 절에서도 여자와 남자를 대비하여 설명합니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확대하여 적용한다면 여자는 설교하거나 가르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논리의 근거로도 이해되었습니다.

 

2.질서와 성숙을 고려하라.(13~14)

여러분!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내 생각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배척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단을 비롯한 보수적인 교단에서 여성을 목사로 안수하지 않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유교의 가부장적인 윤리체계가 교회 안에 굳어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에 대해 가르치는 성경말씀이 그렇게 가르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교훈이 그렇다면 이해되지 않더라도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느냐는 것입니다. 언 듯 보기에는 사도바울이 전하는 말씀이 그렇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표현된 말 자체로 보면 분명히 여자에게 말씀하는 교훈입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하라고 합니다. 여자는 자기 생각이나 이론을 내세우지 말고 무조건 가르치는 대로 배우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해석에 아무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의 내용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여성이라는 성차 때문에 여성이 남성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말씀을 문자대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문화와 배경을 고려하여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기록된 말씀을 문자대로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순서의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인격체이고 인간으로 지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어떤 차이가 있었겠습니까? 여성이라는 자체가 남성보다 못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과 같은 성경말씀을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만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순종하고 배우고 주관하는 일은 성차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사도가 순종하라고 말하고 조용히 배우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디모데전서 213~14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여자가 나중에 지음 받았고 여자가 먼저 죄에 빠졌기 때문에 여성을 목사로 안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일면 타당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여자는 모든 일에 순종하고 조용히 배우라는 교훈에 대한 이유로 제시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주장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나중에 지음 받았으니 나중에 지음 받은 여성인 하와가 아담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질서를 지키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라야 합니다. 성도들은 목사와 장로,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와가 아담에게 순종해야 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아담이 먼저 지음 받았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를 지켜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갈등이나 다툼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남녀평등이라고 부부평등이라고 다른 생각을 고집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자가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서 먼저 마귀에게 속아 죄를 범한 사람은 하와입니다. 그러기에 취약성이 큰 하와는 비교적 더 신뢰할 수 있는 아담에게 순종하는 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여자가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질서와 취약성을 고려한 것입니다.

 

3.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15)

그러면 질서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질서라 할 때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질서는 어떨까요? 가정의 질서는 윗세대가 우선일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먼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나중입니다. 그 안에서도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남편이 아내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지만 아내가 더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은 나이가 많은 사람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많을지라도 개인의 특성을 따라서 자기의 권위를 양보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로 봐서는 자기가 권위를 가진 자이지만 상대방이 더 상황에 잘 대처하고 이끌어간다면 상대방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질서를 지키면서도 그것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잘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야 잘 운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안 지려고 고집하고 다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투면 망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모든 일에 순종하고 조용히 배워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취약성의 문제입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는 과정에서 하와의 취약성이 드러났습니다. 그러기에 하와가 상황을 주도하는 것보다는 아담이 권위를 가지고 지도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순종해야 하고 조용해 배워야 하고 더 나아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모두에게 취약성이 있지만 좀 더 지혜롭고 유능한 사람이 권위를 행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취약할까요? 하와가 먼저 죄를 범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기에 하와는 아담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관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남편이 완전하고 아내는 취약합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가정은 남편이 아내보다 더 취약한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보다 부모의 판단력이 바르지만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치매가 있는 부모의 잘못된 말을 순종하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문자대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하라는 말은 디모데전서가 기록될 당시의 문화와 상황을 반영한 교훈입니다. 당시 여성들은 교육을 받거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여성이 열등해서가 아니가 배움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능력이 있다 해도 발휘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을 바로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은 가정이나 주변 상황밖에 몰랐을 것입니다. 알지 못하기에 어떤 일이 발생해도 문제를 파악하거나 바르게 대처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잘 모르면서 섣부르게 나서 말하거나 대처하다가 실수하면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깥세상을 잘 아는 사람의 말을 따라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여자들에게 모든 일에 순종하고 조용히 배우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전한 본문의 말씀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여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서만도 아닙니다. 능력이나 취약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여성을 열등하게 말하거나 차별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문자로만 해석했기 때문에 평등한 세상에서도 여성의 발을 묶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남성이라고 원하는 사람을 무조건 목사로 안수하지 않습니다. 그가 진정 구원받은 사람인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영혼을 사랑하고 교회와 성도를 목양할 자질이 있는지를 고려해 목사로 안수하는 것입니다.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이어서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록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해석한다면 본문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가르쳐주는 교훈은 남녀가 아니라 질서와 자질에 초점이 있습니다.

 

<결론>

그렇습니다. 사회에도 질서가 있지만 교회는 더욱 질서가 중요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해야 합니다. 자기 권위를 내세우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성도들은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전하는 말씀의 교훈과 책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질서는 직책에 따른 것만이 아니라 나이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존중해야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는 성차를 가지고 질서나 우열을 논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111에서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남녀를 동등한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선후의 차이는 있지만 동일한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각자의 자질과 능력에 맞는 위치에 서도록 양보해야 합니다. 사회 구조를 반영한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취약함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본문 디모데전서 215의 말씀을 교훈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단지 여자가 아니라 취약함이 있는 우리들이 자기를 돌아보고 바르게 세워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훈의 말씀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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