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타날 때 이미 알아보았다. 정상적 양식을 지닌 정치인이라면 자기실현적 예언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웃어넘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그 부인 김건희의 경우에는 행보마다 주술에 의존하고 있어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건진’에 이어 ‘천공’이라는 무속인의 그림자가 끊임없이 어른거렸다. 청와대를 거부하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대통령실 이전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확정 배경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최근 부당한 선거 개입으로 구속된 명태균과 김건희 사이에도 주술의 그림자가 매우 짙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술적 믿음에 의존하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주술 정치’라는 말이 상용구가 되어버린 현실 가운데서 도대체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주술 정치’는 대통령의 행보 하나하나가 주술적 믿음에 의존하고 있음을 일컫지만, 지난 2년 반의 통치 행태를 보면 그 말은 더 큰 문제를 함축한다. 윤석열의 통치 행위 자체가 일종의 주술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윤석열 정부 집권 초기부터 강조해 온 이른바 ‘4대 개혁’의 추진 방식이다. 4대 개혁은 국정 목표로 삼은 ‘의료·연금·노동·교육의 개혁’을 말한다. 최근에는 ‘양극화 타개’를 더해서 ‘4+1 개혁’이 되었다.
개혁의 구호가 주술에 가깝다는 것은 말만 무성할 뿐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경우조차 그것이 과연 개혁인지 의심스럽다. 개혁이라면 그 효과로 인한 수혜의 범위가 확대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개혁’이라는 주문(呪文)만 반복할 뿐 그에 상응한 정치적 의지와 제도적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개혁의 실체를 누구도 인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개혁’이라는 말만 반복하니 그야말로 온 국민을 향한 주문 걸기이다.
‘의료 개혁’은 오히려 ‘의료 대란’이라 일컬어질 만큼 국민적 피로감과 불편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가 의료 개혁의 일환이 될 수 있음은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합리적인 의견수렴의 절차를 무시하는 가운데 밀어붙이기만 했고, 그 밖에 의료 현장의 여러 문제에 대한 대안은 발견할 수 없다. 2,000명 증원을 구호적으로 반복했을 뿐 국민의 생명과 갈등에 대해서는 방치하고 있다.
‘연금 개혁’은 오리무중이다. 윤석열 정부의 연금 대책은 기본적으로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와 시민 간 계약이라는 연금제도의 취지와 달리 국가적 책임은 방기(放棄)한 채 연금보험료는 높이고 소득 보장은 사실상 감소할 수밖에 없는 방안이다. 그것도 지난 회기 국회의 연금특위에서 시작하여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수년간 논의로 수렴된 방안을 팽개쳐버리고, 일방적으로 새로운 안을 제시하여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노동 개혁’은 더욱 난감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연장 시도,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거부, 최저임금 억제, 노동시간 연장, 여기에 더해 노조 회계 공개, 파견근로자 업종 확대, 파업 시 대체인력 투입, 경영효율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공공부문에서의 자산매각, 구조조정, 외주화, 직무 성과급제 등 한결같이 노동자의 권익에 반하는 것들이다. 노동부 장관마저 반노동 인사 김문수에게 맡겼으니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을 옥죄겠다는 의지만 드러난다.
‘교육 개혁’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초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 교육부 장관을 맡았던 이주호를 장관으로 다시 기용한 데서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가 추진했던 정책은 이미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실패했던 정책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자율과 경쟁이란 이름으로 추진한 학교 자율화 정책, 고교 다양화 정책, 입시 자율화 정책 등의 정책을 확장하는 기조에서 교사 개혁, 지역의 자율성 확대 및 대학 개혁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것이 개혁인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이른바 ‘4대 개혁’에 더하여 최근에는 느닷없이 ‘양극화 타개’를 내세우고 있다. 때 늦기는 했어도 이를 국정 과제로 삼았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빈말이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심각한 세수 결손 사태에서 부자 감세를 고집하고,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정부가 도대체 무슨 수로 양극화를 타개할 수 있단 말인가. 증세도 없고 재정 투여도 없는 상황에서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 한결같이 빈말이라는 것은, 그 정책을 구현할 수단을 전혀 갖추지 못한 데서 분명하다. 정책을 구현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그 구체적 절차로서 국회의 동의와 입법을 구해야 한다. 국회법안의 거부권을 남발하고, 야당과 극단적 정쟁으로 내달리는 ‘정치 실종’의 상황에서 국정 과제를 어떻게 수행한단 말인가. 그러니 윤석열 정부의 개혁이란 주문(呪文)에 지나지 않는다. 주문만 반복하는 주술이 문제인 것은 책임 의식과 실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성숙한 윤리의식과 사랑의 행동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현실은 한심할 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주술에 빠진 윤석열 정부에서 어떤 정당성도 어떤 가능성도 찾을 수 없음이 참으로 비극이다.
윤석열 폭정종식 그리스도인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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