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구약성경의 동성애(퀴어신학의 구약해석 비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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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동성애(퀴어신학의 구약해석 비판)-3

기사입력 2022.08.2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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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사시대의 동성애

구약에는 소돔의 동성애를 기록한 창세기 191-11절 이외에 동성애를 소재로 한 또 하나의 내러티브, 사사기 1916-30절이 있다. 사사기 1916-30절의 플롯 전개는 창세기 191-11절과 매우 흡사하다. 한 레위인이 그의 첩과 함께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로 가다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지역을 지나가게 된다. 이 때 기브아의 한 노인이 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인다. 이 때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이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 말한다.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22). 여기서 동사, “관계하리라는 창세기 195절의 상관하리라와 같은 히브리어 동사인 야다”(알다)이다. 이 노인은 자기 집에 온 손님에게 망령된 일을 하지 말라고 청하며 이 남자 대신 자신의 딸과 손님의 첩을 내어주겠다고 말한다. 결국 손님인 에브라임 사람은 자신의 첩을 그 불량배들에게 내어 주고 그 첩은 밤새도록 그 불량배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새벽에 돌아왔지만 결국 죽게 된다. 이에 에브라임 사람은 그 첩의 시체를 열 두 덩이로 잘라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내고 이스라엘 민족은 기브아가 속한 베냐민 지파와 민족전쟁을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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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동성애-타락의 바로미터

구약의 동성애 관련 두 내러티브가 각각 소돔과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동성애가 한 사회의 타락의 정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소돔은 고모라와 함께 구약에서 타락한 사회의 상징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을 이스라엘 여러 지역으로 보내면서 만약 누구든지 그들을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지역에서 나가서 그들의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말하였다(10:15). 예수님의 제자들을 거부하는 지역은 타락의 상징인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을 말한 것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거부하는 죄가 얼마나 큰 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가 많은 권능을 행하였지만 회개하지 않은 가버나움에게, 심판 날에 소돔 땅이 가버나움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1:23). 타락의 상징인 소돔을 언급하며 가버나움의 완악함을 비판한 말씀이다.

사사시대는 또 어떠한가? 이스라엘의 역사 중 사사시대는 가장 타락한 시대였다. 사사시대의 타락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구절은 사사기의 맨 마지막 절,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이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법이 된 시대,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 중 가장 타락하고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대가 사사시대이다. 하나님이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웃 민족에게 붙여 심판하고 나면 그제야 하나님을 부르짖고 이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러나 평화의 시간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우상숭배에 빠지고 타락하는 것을 반복했던 시대가 사사시대였다.

동성애로 인하여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사사기 19장의 기브아가 속한 베냐민 지파는 하나님께 큰 심판을 받았다. 소돔 땅에는 하나님께서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려서 그 지역의 성을 멸하셨고 베냐민 지파는 거의 진멸되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가 600명의 남은 용사가 지파의 씨가 되어 극적으로 회생하게 된다(21). 구약의 두 개의 동성애 내러티브가 공간적 타락의 상징인 소돔과 시간적 타락의 상징인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했음을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에 동성애가 확산되는 것은 구약의 관점으로 볼 때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구약의 관점으로 본다면 동성애의 확산은 영적 어두움이 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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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동성애-개혁의 대상

구약에서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은 남색하는 자(동성애자)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개혁적인 왕들이 남색하는 자를 쫓아낸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 남창혹은 남색하는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카데쉬로서 성전과 우상 신전에서 동성애를 유혹하던 개혁의 대상이었다. 퀴어신학자 Ken Stone카데쉬혹은 복수형, “케데쉼과 여성형 단수, “케데샤,” 여성형 복수, “케데쇼트가 열왕기서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기는 했지만 이들이 성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부인한다.그러나 신명기 2317-18절에서는 케데샤”(17)조나”(, 창녀, 18)로 지칭함으로서 케데샤가 성적관련성이 있는 단어임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 “케데샤”)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창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 “조나”)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23:17-18)

 

또한 창세기 38장에 기록된 유다와 다말 이야기에서도 케데샤창녀를 의미하는 단어임을 보여준다. 창세기 3815절에서 유다는 얼굴을 가린 다말을 창녀(, “조나”)로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고 같은 장 21절에서 유다는 그 창녀에게 맡긴 담보물을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 “케데샤”)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조나”)로 여겨(38:15)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케데샤”)가 어디 있느

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케데샤”)가 없느니라”(38:21)

 

이렇게 케데샤가 창녀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남성형 카데쉬는 개역개정에서 번역하듯이 남창”, “남색하는 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명기 2318절에서는 이 카데쉬를 경멸적으로 ”(, 켈레브)에 비유했고 이는 남창의 동성애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운 일임을 잘 보여준다. 이상적으로는 이스라엘에 동성애를 행하는 남색하는 자가 없었어야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남색하는 자가 존재했다. 열왕기상 1424절에는 르호보암 시대에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을 하는 남색하는 자(카데쉬)가 있었음을 기록한다.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아사와 여호사밧, 요시야와 같은 왕들은 이러한 남색하는 자들(케데쉼)을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내는 개혁을 단행한 왕들로 기록되어 있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왕상 15:11-12)

 

(여호사밧)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왕상 22:46)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왕하 23:7, 요시야의 개혁)

 

이렇게 가증스러운, 개혁의 대상이었던 남색하는 자(카데쉬)는 욥기에서 저주의 상징으로 기록된다. 욥기 3613-14절에서 엘리후는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 남색하는 자과 함께 있게 될 저주를 말한다.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케데쉼)과 함께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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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다윗과 요나단의 동성애?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구약성경에서 우정의 귀감으로 뽑힌다. 그런데 퀴어신학에서는 이 우정의 귀감을 동성애 관계라고 주장한다.하나님의 마음의 합한 사람 다윗이 동성애자였다면 동성애가 성경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겠지만 성경에는 다윗과 요나단을 동성애자로 봐야 할 근거가 없다. 사무엘하 126절과 같은 구절은 다윗과 요나단을 동성애자로 보는 퀴어신학에서 언급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

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이 말은 요나단이 길보아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이 슬픔 가운데 한 말이다. 이 구절에서 다윗은 요나단의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아하바로서 한국어의 사랑”, 영어의 “love”와 같이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이다.한국어와 영어에서 동성애와 전혀 상관없는 동성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표현할 때 사랑“love"를 사용하듯이 히브리어에서도 동성애와 전혀 상관없는 동성 간의 관계를 나타낼 때 아하바를 사용한다.그 예로 아래 두 구절을 들 수 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아하브) 자기

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삼상 16:21)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이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아하브)(왕상 5:1)

 

사무엘상 1621절과 열왕기상 51절 모두 동성이었던 다윗과 사울, 다윗과 히람의 관계를 사랑(아하브)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두 관계 모두 동성애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윗을 향한 사울의 신임과 다윗을 향한 히람의 정치적 신뢰를 나타낸 것이다.이와 마찬가지로 사무엘하 126절에서 언급한 요나단의 사랑은 요나단과 다윗의 깊은 우정을 말한 것이다. 다윗과 요나단이 동성애를 나누는 관계였다면 성경히브리어로 성적 관계를 나타내는 야다”(알다)가 사용되었을 것이다.그러나 구약에서는 다윗이 요나단이 서로 알았다”(야다)고 표현한 구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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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오는 말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성경은 동성애에 관하여 일관되게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레위기 1822절과 2013절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동성애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죄이고 죄의 경중을 따지자면 매우 무거운 죄로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지고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로 기록되어 있다. 동성애와 관련한 구약의 첫 번째 본문인 창세기 19장의 소돔의 죄와 관련하여 퀴어신학에서는 소돔 사람들과 같은 강제적인 성폭력이 아닌 동의하에 이뤄지는 동성애는 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창세기 19장의 소돔의 죄를 해설하는 에스겔 1650절과 유다서 7절을 고려할 때 소돔의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동성애를 제외하고 논하기 어렵다. 퀴어신학에서는 구약의 동성애 금지명령이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적용되는 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신약에서도 동성애를 부끄러운 죄로 규정하기 때문에 이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또한 퀴어신학에서 구약의 동성애 금지명령이 남자에게 주어진 것이고 여자 동성애에 관하여 침묵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여자 동성애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 문화와 문학에서 일반적으로 남자가 대표성을 갖기 때문에 동성애 금지명령을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을 읽는 것은 오독에 불과하다. 퀴어신학에서는 구약에서 가증하며 개혁의 대상으로 일컬어지는 카데쉬(남창)의 성적 연관성을 부인하지만 카데쉬에 상응하는 여성형 명상 케데샤가 창녀를 의미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성경 번역과 같이 카데쉬를 남창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퀴어신학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동성애일 것이라 주장하며 동성애의 성경적 토대를 마련하려 하지만 다윗과 요나단의 기사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이 동성애 관계임을 말해주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사사기 19장에는 창세기 19장의 소돔 이야기와 매우 흡사한 동성애 내러티브가 있다. 타락의 상징 도시 소돔과 타락한 시대의 상징인 사사시대에 비슷한 동성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한 사회의 타락과 동성애의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구약에서 타락의 상징이며 죄 중에서도 가증한 죄로 기록된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지 않는 데에 퀴어해석의 오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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